할머니, 무슨 과일을 좋아하세요?

살젠허난 그리울 새가 어섯져(사는게 힘들어 그리울세가 없었어). 꿈에라도 보고 싶은디 얼굴을 알아사주. 몰라. 나와신디 몰라본 걸지도(꿈에서라도 보고 싶은데 얼굴을 몰라).

제주를 나고 든지 8년 즈음 되었던 때 4.3을 만나게 되었다. 4.3 70주년을 맞아 7일 간의 기념식이 대규모로 진행되면서다. ‘옛날사진관’이라는 프로젝트에서 유족의 초상사진을 찍는 사진작가로 참여하게 되었다. 우연히 참여했는데 마치고 보니 300명이 넘는 유족들의 입에서 한올한올 풀려나오는 기억과 한탄의 실타래를 직접 듣게 되었다. 유족들이 희생자에게 보내는 짧은 글에 품어진 슬픔은 내가 감당하기 어렵도록 묵직했다.

그 슬픔보다 더 나를 오래도록 먹먹하게 만들던 건 4.3으로 5살에 고아가 되셨다는 어머니의 말씀이었다. 부모가 그리울 사이도 없이 거대하게 삶을 덮쳐온 것은 하루하루 일상의 삶이었다. 부모의 죽음 앞에 흘리던 피눈물은 배고픔 앞에서 무기력했다.

유족들을 통해 4.3으로 들어가며 난 처음에는 “이념”이라는 참 되지도 않는 것을 물었었다. 그런데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미적미적 뭉개졌다. 대답이 시작되지 않고 시간을 먹어가는 사이 난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이 이념은 이들의 것도, 나의 것도 아님을. 우리가 옆사람을 빨갱이나 진보로 적대시하도록 만드는 이념은 원래 우리 것이 아니었다. 김매던 아낙이, 소를 몰던 농부가 전복 따던 해녀가 어느 날 밥먹다가, 혹은 잠자다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이런 삶의 실체 속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우리가 만든 것도 아니다. 위로부터 프로그래밍되어 우리에게 덧씌운 무형의 형틀인데, 그것은 언제나 우리에게 들러붙을 준비가 되어 데일 듯 물큰하게 우리 주변을 맴돈다. 결국 우리가 서로에게 칼을 겨누며 밥도 못먹고, 잠도 못자도록 만들어버렸다.

4.3 이후에도 모질게 몰아치던 이념의 회오리로 무너져버린 그 일상을 유족들은 홀로, 그리고 나중에는 부부가 한 팀이 되어 함께 견디고 버텨 수십 년을 지켜냈다. 지켜낸 일상은 도도하게 흐르는 역사와 세대를 만들었다.

나는 이제 할머니에게 이념을 묻지 않는다. “무슨 과일을 좋아하세요” 하고 묻는다.

윤공헌 _2018_Pigment print_140x100cm_ ⓒ박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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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석 _2018_Pigment print_140x100cm_ ⓒ박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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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리용사 오태경 _2018_Pigment print_140x100cm_ ⓒ박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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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옥자_2018_피그먼트 프린트_140x100cm_ ⓒ박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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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송길 _2018_Pigment print_140x100cm_ ⓒ박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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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오 _2018_Pigment print_140x100cm_ ⓒ박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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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오_2018_피그먼트 프린트_140x100cm_ ⓒ박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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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봉천_2018_Pigment print_140x100cm_ ⓒ박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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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오_2018_피그먼트 프린트_140x100cm_ ⓒ박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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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화 _2018_Pigment print_140x100cm_ ⓒ박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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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생_2018_Pigment print_140x100cm_ ⓒ박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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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옥순 _2018_Pigment print_140x100cm_ ⓒ박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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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문_2018_Pigment print_140x100cm_ ⓒ박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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