入 島 祖 / 입도조 _ 서인 해 _Pigment print_ⓒ 박정근 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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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없는 섬의 사람들: 입도조 이야기

                                                            이나연 독립큐레이터미술평론가

사람이 없던 섬에 육지에서 건너와 정착해 시조가 된 사람들을 ‘입도조(入島祖)’라고 부른다. 다른 지역에서 섬에 들어온 동일 성씨의 선조. 삼성혈에서 나왔다는 토착 성씨인 고, 부, 양 씨를 제외하면 모두 입도조를 가진 셈이다. 사람이 없던 섬에 입도조들이 왔다. 조선 개국에 반대한 유배자들이 대다수 제주에 모여 선조가 되었다. 제주 출신인 나의 선조도 어느 땐가 제주로 유배했거나 정치적 피신을 한 관리였을까. 큰 잘못을 저질러 사람 없는 섬으로 피신한 죄인이었을까. 어쩌면 감귤을 따라, 혹은 따뜻한 기후를 따라 어떻게 나의 입도조는 입도조가 되었을까?

박정근은 2010년을 전후에 제주로 들어온 제3세대 입도조를 불안 계급으로 이해한다. 박정근 작가 자신 역시 불안한 환경을 가진 제주에서 작업을 이어가며, 이 작업들을 관통하는 코드를 자연스럽게 찾아냈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대, 불안 계급을 유인한 자연과 문화를 제주가 가지고 있었다.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입도한 이들은 불안 계급에 속한 이방인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찍어나간 작가 박정근의 자화상을 다시 그들 3세대 입도조를 통해 찍어가고 있었다. 벌써 10여 년 전부터 박정근이 제주에서 찍어나간 해녀에서부터 입도조, 4.3의 유가족 등, 일련의 작업들은 관찰자로서든 증언자로서든 모두 제주라는 환경에 속한 작가의 위치를 끊임없이 확인하는 과정이고, 그 자신의 위치를 명확히 묘사하는 입도조 시리즈는 그 점에서 가장 유의미한 작업이라 말할 수 있다.

불안한 사진 속 3세대 입도조는 발을 땅에 딛고 있지만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지만 동시에 다른 곳을 보고 있다. 신대륙으로 이주했던 청교도인처럼, 떠돌아야만 삶이 살아지는 집시처럼, 새로운 터를 찾아, 스스로 설계하는 삶을 찾아, 제주라는 곳에 입도한 이들은 아직 이 땅에 뿌리를 내리진 못했다. 개척자의 운명이고 입도조의 삶의 방식이다. 때로는 이 곳에 왜 위치하는지도 모른 채 이 환경에 놓였지만, 실상 모두 자신의 선택이다. 사람이 태어나기를 선택할 수 없지만, 주어진 환경에서 어떻게든 살아내는 것처럼, 입도조의 운명도 그러한 모양이다. 질 좋은 삶, 즐거움, 자연 등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 사는 곳을 바꿔봤지만, 살다 보면 왜 왔는지 모르는 지경에 처하는 데다가, 이주의 이유를 증명해 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길에서 다시 길을 잃기도 한다. 불안한 상태의 지속이다. 사진 속 초상들은 모두 그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숲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꿈꾼 한 입도조 가족의 사진이 있다. 4-6살 사이의 두 딸과 30대 중후반의 젊은 부부가 숲에 서 있다. 숲 너머의 배경에는 우주선처럼 보이는 석유공장이 있다. 자연에서의 삶을 기대했는데, 근처엔 공장지대가 있고, 사진 속의 공장은 우주선 같다. 이주민들이 제주에서 기대한 삶과 실제 살아가야 하는 삶과의 괴리를 한 장의 사진으로 보여준다. 아직은 숲 속에 있는 입도조 부모의 품을 떠나 두 딸은 저 너며 석유공장 쪽으로 넘어가 살게 될까. 아니면 정말 숲 속에서 부모가 꿈꾸던 이상을 실현하며 살아가게 될까.

실상 박정근이 묘사하는 건 바로 지금 제주의 상황이고 환경이다. 따라서 입도조 시리즈에서는 사람뿐 아니라 풍경을 포함하는 게 자연스럽다. 기운이 좋아서 해녀들이 기도를 드리는 종달리의 한 신당(해녀당)에 화려한 조화가 들어섰고, 공들인 술과 음식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신에게 공을 들이라고 만들어놓은 데크에는 “공들인 음식 갖고 가세요”라고 삐뚤어진 글씨로 씌어있다. 동네 사람들은 이주민들이 신당에 조화를 들여놓았다고 말을 전한다. 토착문화에 유입된 이질적인 요소들이 갈등 혹은 이질감을 야기하는 풍경을 만든다. 지역의 문화와 이주민이 더해 놓은 행위가 탄생시킨 기묘한 풍경이 지금의 제주를 보여주는 문화가 된다. 문화도 바뀌었고 신에 대한 태도도 변했다. 이 풍경이 사람으로 옮겨지면 사람이 들어간 이질적 풍경이 된다.

의도적으로 발을 숨기거나 자르거나 어두움에 가려지도록 연출된 사진 속 입도조들의 초상은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인지 땅에 내려앉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어중간한 위치에 놓인다. 제주도의 특징적인 자연이나 인물이 속한 집이나 좋아하는 문화가 있는 공간에서 찍힌 초상은 제주로의 이주를 통해 자연과 문화를 바탕으로 본인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가시화하는 화면이다. 정치적인 유배를 한 1세대 입도조와 경제적인 이유로 제주로 온 2세대 입도조와는 다른 이유로 제주에 온 3세대 입도조들의 초상은 불확실한 이주의 이유만큼이나 불안정하다. 불안정함을 각오하고 찾아온 이 곳, 누군가는 아래로 내려와 점차 이 땅에 뿌리를 내리게 될 테고, 누군가는 훌쩍 날아 다른 곳으로 떠나리라. 정착하지도 떠나지도 않은 이 상태의 불안감은 어쩌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동력이 될지도 모른다. 부족한 문화적 인프라와 거칠기만 한 자연의 품에서 어떤 동력이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박정근이 포착한 입도조 시리즈의 초상들은 입도조이기도 하지만, 제주의 새 문화를 만드는 조상 노릇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미 박정근 작가가 스스로 그러하고 있는 것처럼.   

入 島 祖

박정근

나고 자라 터를 이룬 장소를 등진 후 섬을 밟아, 섬에서 나고 자라 터를 이루는 자손의 첫조상이 되는 사람, 제주에서는 이들을 입도조 [ 入島祖 ]라 칭한다. 제주가 자연환경 항유 및 느리게 사는 삶의 적지로 인식되면서 경쟁으로 내몰리는 숨가쁜 삶에서 삐걱거림을 느끼던 사람들이 제주에 입도조로 정착하고 있다.

본 작업은 문화적 요인, 더 구체적으로는 ‘자연’과 ‘문화’를 코드 삼아 청년세대 제주 입도조를 관망함으로써 이들을 사회구조적인 변화로 인한 ‘불안계급’으로 규정하고 있다.

청년세대는 직업을 갖기도 어렵거니와 갖게 된다고 해도 산업화를 일군 부모세대 시절처럼 크고 작은 내면의 소리를 억눌러줄 만큼 질좋은 직업이 보장되지 않는다. 주거도 불안정하다. 불안정한 일자리를 따라, 혹은 임대료가 저렴한 주거지를 찾아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느라 주민등록등본은 페이지를 넘긴다. 차라리 재능과 열정을 기반으로 어느 곳에건 정착하여 자신만의 삶을 살고 싶은 생각이 고개를 든다. 그래서 청년세대 입도조는 자신들을 가두던 양복을 벗어던지고 제주 곳곳으로 스며들어 개성 및 재능을 이용해 제주의 색감을 바꾸어가고 있다. 용접기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조형물을 만들고, 부유하는 삶의 경험을 밑천삼아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는가 하면, 도시의 감성을 해변가나 한적한 농촌마을로 옮겨와 까페나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한다. 이러한 문화적 발현은 사진 속에서 입도조의 생생한 색감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산업화 시대를 이끌던 빛바랜 수출용 컨테이너박스 더미와 날카로운 대조를 이루고 있다.

또한 도시에서는 자연을 즐길만한 여유가 없었다. 제주 입도조 중 상당수는 본연의 자연을 표방하는 제주의 자연에 이끌려 제주로의 이주를 결심하고 자연 속에서 여유있는 삶을 꾸려나간다. 그런데 이 자연은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 즉 첫번째 자연 (First nature) 이라기 보다 인간이 상상한 자연을 물리적으로 실현한 두번째 자연 (Second nature) 이다. 빡빡한 삶을 피해 제주로 이주하는 청년 입도조들에게는 숨가쁜 경쟁사회에 물들지 않은 자연이 도피처의 조건이지만, 정작 찾아나섰던 자연은 자본주의적 생산을 위해 ‘포장’된 자연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제주 해녀들의 주요 채취물인 문어 조형물이 바닷가 담벼락을 넘나들고 다양한 종류의 자연을 주제로 하는 테마파크들 너머 브라키오사우루스의 기다란 목과 머리가 불쑥 솟아 한 입도조 가족을 지켜보고 있다.

본 작업은 문화와 자연을 쫓는 청년세대 입도조를 불안계급으로 보고 있다. 경제학자 가이 스탠딩은 안정적 급여생활자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불안계급(precariat) 개념을 제안하여 이들 내에 Anxiety(불안), Alienation(소외), Anomy(사회적 무질서), Anger(분노)인 4A가 자리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안정적 경제기반을 확보하지 못한 채 주변부를 부유하다 제주로 흘러든 청년세대는 화려한 색감의 재기 넘치는 소품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4A가 내재된 불안한 표정을 감출 수 없다.

청년세대 제주 입도조에서 출발하여, 사뭇 결이 다른 생각으로 작가노트를 마무리 지으려 한다. 제주의 자연이건, 사람이건, 혹은 조형물이건, 본디 제주 토박이라는 것이 있었던가. 사진 속 제주 입도조들은 이제 막 입도하여 제주 땅에 아직 뿌리를 박지 못한 채 이물감을 내뿜고 있다. 타이어가 점점이 박힌 중산간 소규모 테마파크에 있는 조악한 자유의 여신상, 그리고 해안가 신당에 있는 제주 사람들에게는 쓰레기에 불과한 현란하게 화려한 조화더미처럼. 시간이 경과하면서 청년세대 입도조도, 자유의 여신상도, 그리고 조화도, 야자수나 감귤이 원래 제주의 것으로 인식되는 것 마냥 제주 풍경에 붙박이로 스며들 것이다.

원래 그랬던 것은 없다.

入 島 祖 / 입도조 _ 효정 01_Pigment print_ⓒ 박정근 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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入 島 祖 / 입도조 _ 효정 02_Pigment print_ⓒ 박정근 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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入 島 祖 / 입도조 _ 종달리 당 _ Pigment print_ⓒ 박정근 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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入 島 祖 / 입도조 _하라, 마르꼬 _Pigment print_ⓒ 박정근 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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入 島 祖 / 입도조 _ 세훈 _110x150_Pigment print_ⓒ 박정근 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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入 島 祖 / 입도조 _ 중산간 여신 _Pigment print_ⓒ 박정근 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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入 島 祖 / 입도조 _ 윤민 _Pigment print_ⓒ 박정근 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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入 島 祖 / 입도조 _ 윤민, 영주 _Pigment print_ⓒ 박정근 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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入 島 祖 / 입도조 _ 수리, 장즈 _Pigment print_ⓒ 박정근 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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入 島 祖 / 입도조 _ 개량 동백 _110x150_ Pigment print_ⓒ 박정근 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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入 島 祖 / 입도조 _ 국희, 이윤 _110x150_ Pigment print_ⓒ 박정근 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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入 島 祖 / 입도조 _ 지호 _110x150_ Pigment print _ⓒ 박정근 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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入 島 祖 / 입도조 _ 김태유 _110x150_ Pigment print_ⓒ 박정근 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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入 島 祖 / 입도조 _ 新 _ 110x150_ Pigment print _ ⓒ 박정근 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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入 島 祖 / 입도조 _ 이하 나 _110x150_ Pigment print_ⓒ 박정근 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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入 島 祖 / 입도조 _ 배 _ 110x150_ Pigment print _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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入 島 祖 / 입도조 _ 안 지석 _110x150_ Pigment print_ⓒ 박정근 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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入 島 祖 / 입도조 _ 루니,이지 _110x150_ Pigment print_ⓒ 박정근 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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入 島 祖 / 입도조 _ 야자수 _110x150_ 안료 프린트 _ⓒ 박정근 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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入 島 祖 / 입도조 _ 박선영 _110x150_ Pigment print_ⓒ 박정근 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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入 島 祖 / 입도조 _ 박소연 _110x150 _Pigment print_ⓒ 박정근 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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入 島 祖 / 입도조 _ 현주 _110x150_ Pigment print_ⓒ 박정근 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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入 島 祖 / 입도조 _ 국제 결혼 _110x150_ Pigment print_ⓒ 박정근 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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入 島 祖 / 입도조 _ 염 현주 _110x150_ Pigment print_ⓒ 박정근 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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入 島 祖 / 입도조 _ 한라산 _110x150 _Pigment print_ⓒ 박정근 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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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마당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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